더이노베이터스

AI시대의 디자인

수십 년 동안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사람들을 정해진 도로 위로 안내해 왔다. 파일과 폴더, 버튼과 메뉴, 화면과 흐름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UI는 사용자가 시스템을 예측하고, 이해하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결정론적인 인터페이스 구조는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사고방식을 형성해왔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어떤 순서로 정보가 흘러가는지, 사용자가 어떤 화면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시각화하며, 그 과정을 다듬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다. 즉, 디자인은 동적이지만 명확히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AI, 특히 LLM(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정론적 UI에서 자유로운 인터페이스로

ChatGPT가 등장한 이후, 채팅 인터페이스는 ‘AI 네이티브’ 경험의 표준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메시징 UI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용자는 더 이상 메뉴나 버튼을 탐색할 필요 없이, 단지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적기만 하면 된다. 텍스트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페이스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기존에는 기능과 흐름을 사전에 설계하고, 그에 맞춰 UI를 구성했다면, AI 기반 인터페이스에서는 입력이 곧 스펙이 되고 출력이 동적으로 형성된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용자라도 어떤 식으로 요청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UI 디자인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예측 가능성에서 벗어난 환경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한다. 명확히 정의된 여정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형태는 여전히 기능에 따라 달라진다

디자인의 본질은 언제나 기능에 기반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인터페이스는 도구가 어떤 용도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맥락을 제공하고, 사용자가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이나 인지 부하를 최소화한다.

하지만 LLM 기반의 인터페이스는 이 공식을 깨트린다. AI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형태가 없어지고 기능도 흐려진다. 마치 강둑이 없는 강처럼, AI는 방향성 없는 힘으로 흐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디자이너는 이 흐름에 방향을 부여하고, 형태를 구성하며, AI의 잠재력을 구체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따라서 ‘기능을 모르는 상태에서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는 마치 안개 속 협곡 위에 다리를 놓으려는 것처럼 불확실한 작업이다. 결국 우리는 기능을 먼저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기능을 탐색하고 발견해가며 형태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게 된다.

채팅 인터페이스의 한계

지금까지 대부분의 AI 기반 제품들은 채팅 인터페이스라는 단순한 형식에 의존해왔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AI가 답변을 출력하는 구조는 구현이 간단하고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복잡한 업무 흐름이나 협업 시스템과 연결되기에는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단편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접근 방식 중 하나는 AI의 출력 결과를 구조화된 형태로 변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CSV, JSON, 코드, 요약 리포트 등 특정 포맷으로 만들어 다른 시스템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아티팩트’를 생성하는 전략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결국 인터페이스 자체가 업무의 맥락과 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AI의 출력은 여전히 단절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워크벤치: AI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메타포

디자인과 AI의 관계를 다시 상상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메타포 중 하나는 ‘작업대(워크벤치)’다. 목수의 작업대처럼, 인터페이스는 AI 도구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컨텍스트를 제공하는 환경이어야 한다. 작업대는 도구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어떤 도구든 그 환경에서 유용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Linear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AI가 삽입되기 이전부터 워크플로우 중심의 구조와 맥락을 잘 제공하고 있었다. 이처럼 기능 중심의 앱 안에 AI 기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디자인된 환경은, 채팅 인터페이스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과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 에이전트 기반 워크플로우가 증가할수록, 워크벤치는 더 중요해진다. 에이전트는 단순히 응답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자 대신 작업을 수행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전달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구성하고 검토하고 제어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해질 것이다. 디자인은 바로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자에게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치며

AI 시대의 인터페이스는 더 이상 단일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경로로 뻗어나가는 다중 경로의 시스템이 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다시금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사용자가 어떤 기능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그 기능이 드러날 수 있는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우리가 가는 길에는 더 이상 기존의 도로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이 완전히 자유롭기만 해서는 안 된다. AI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도로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디자인은 그 길을 다시 그리는 일이며, 지금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TI Tech Lab 이유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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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티클은 아래 블로그를 번역하여 전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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